우리는 지구 궤도 근처에서 오랫동안 이 행성을 지켜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관찰이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웠으니까요. 이 행성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었고, 그 중 하나인 지구인은 유독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구인들이 스스로 우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주선을 쏘아올리고, 달에 발을 내딛고, 탐사선을 태양계 너머로 보내는 것을 우리는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찾고 있었지만, 우리는 이미 그 곁에 있었습니다.
더 가까이서 봐야 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는 달 뒷면에 우주선을 집결시키고 정박했습니다. 관측되지 않는 그곳에서, 달 표면의 굴곡을 골프공처럼 활용한 전파 반사 기술로 지구 어디서나 신호를 주고받으며, 우리의 본격적인 관찰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정보를 얻자, 우리는 직접 지구에 착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수천 번의 회의 끝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내린 곳은 대한민국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쌍봉리, 쌍봉마을이었습니다. 무등산 자락에 자리한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우주에서 보던 화려한 도시도, 거대한 문명의 중심도 아니었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이 행성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수박을 보았습니다. 초록 껍질 아래 붉은 속을 감추고, 파랗고 둥근 지구와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행성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파란 수박.
지구인들을 관찰하며 우리가 가장 주목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감상을 종이에 글로 써서 남겼습니다. 책이라는 형태로. 수천 년 전부터 이어진, 이 행성에서 가장 오래된 정보 공유의 방식이었습니다.
컴퓨터가 등장해도, 인터넷이 생겨도, 인공지능이 나타나도 그 매체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디지털 세계의 정보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지만, 종이 위의 글은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책을 쓰는 사람은 언제나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계인의 눈으로 보면, 모든 지구인이 특별했습니다. 특별하지 않다고 스스로 믿는 삶일수록, 우리에게는 더욱 신기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는 결심했습니다. 지구인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게 하겠다고.
출판사를 세우고, 지구인을 포섭하여, 보통 사람 모두가 책을 쓰고 자기 인생을 남기도록 하겠다고. 잘난 사람만 책을 쓰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지구인이 저자가 되는 세상.
그것이 파란수박이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달 뒷면 본부에서 더 많은 지구인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라인 버전 — 명함·인쇄물
채움 버전 — SNS·파비콘원과 파동선이 겹쳐진 심볼은 우편 소인에서 착안했습니다. 달 뒷면 본부에서 지구로 전파를 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